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박완서의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 소녀가 겪는 성장통과 가족사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1992년 출간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전쟁의 그늘 속 피어난 소녀의 이야기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개성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나'는 나림 부유한 시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싱아며 달래, 고사리 같은 산나물들은 그녀의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상징합니다.
개성에 살던 주인공인 '나'는 7살 무렵 오빠를 서울 학교에 보내겠다고 먼저 올라갔던 엄마의 손에 이끌려 상경하게 됩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온 주인공은 서울의 더럽고 삭막한 서울 풍경에 실망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오빠는 졸업을 하고 일본 취직을 하게 되고, 엄마는 무리를 해서 집을 삽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르러 오빠는 결혼을 하고, 주인공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책 읽는 데 몰두하게 됩니다. 8.15 광복을 거쳐, 1950년에 20살이 되어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에 입학하기에 이르고, 바로 그 해에 6.25 전쟁을 몸소 경험하게 됩니다.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가 의용군으로 떠나버린 오빠 때문에 주인공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기도 합니다.오빠는 1.4 후퇴로 인해 남은 가족들이 피난을 가려던 차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고, 그런 사정이 겹쳐 식구들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 현저동에 몸을 숨기게 됩니다. 주인공은 이런 현실 속에서 급격히 성장해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갑니다.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아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전쟁과 국권침탈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다루면서도, 결코 무겁거나 어둡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본인이 살아온 시절의 참혹함과 그로 인한 상처를 직시하면서도, 따뜻한 유머와 해학을 잃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겪는 성장통과 가족애는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집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싱아'는 단순한 산나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 평화로웠던 날들, 그리고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은유입니다.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물음은 단순한 의문이 아닌, 전쟁이 앗아간 모든 것들에 대한 서글픈 성찰이자 질문입니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민족의 비극을 그려내면서도, 결코 거창한 역사적 서술에 빠지지 않습니다. 대신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 가족들과의 따뜻한 기억,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이런 세밀한 관찰과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이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로서 전쟁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작품 속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내는 어머니의 강인함과 희생은, 당시 많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겪었을 현실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어머니를 단순한 희생자나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때로는 강인하고, 때로는 나약하며,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한 한 인간으로서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인간성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과 연대,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치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나는 싱아처럼, 인간의 희망과 생명력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다시 피어난다는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귀중한 문학적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박완서의 수필적 소설으로 자전적 이야기에 한국 근현대사를 녹여낸 생생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이 책과 함께 후속작도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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