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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log/보고 들은 것

다니구치 지로, 쿠스미 마사유키 <고독한 미식가> Review : 원작의 품격

 
고독한 미식가
<아버지>(원제, ‘아버지의 달력’)로 2001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스페인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상하고,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의 <신들의 봉우리>로 2005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화상을 받은 유명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도쿄 맛집 산책 『고독한 미식가』. 도쿄와 오사카의 소박하고 오래된 18곳의 식당을 혼자 돌아다니며 일본 고유의 음식 맛을 즐기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지 일본인 리포터가 이 책에 소개된 음식점을 직접 돌아보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 별책부록은 천 엔 미만으로 진짜 일본 음식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저자
다니구치 지로,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출판
이숲
출판일
2010.04.01



음식 관련 만화를 좋아하는 와이프의 추천으로 접한 이 책은 여느 음식 만화 혹은 맛집 소개 만화와는 좀 다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주 담담합니다. 일본 만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 대단한 맛집을 소개하지도 않습니다. 주방장의 몇 대를 걸쳐 내려오는 비밀의 레시피를 공개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역업을 하는 독신남 '이노가시라 고로'상은 일을 하다 배가 고파 들른 일본 어느 동네의 식당을 소개하거나, 출장과 외근을 오가며 먹은 음식들을 말 그대로 그냥 알려줍니다.

일본 드라마판에서도 이 설정은 그대로 차용한 듯합니다. 주인공인 '고로' 상이 술을 마시지 않는 설정도 동일한데, 일을 하는 중에 들른 식당이라 업무 중 술을 마시는 장면을 넣는 게 좋게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애주가로서는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소개되는 식당 중에는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급히 들어간 곳, 원래 가려던 식당이 없어져서 들어간 곳, 클라이언트의 추천으로 찾아간 곳 등 정성을 들여 맛집을 찾아가기보단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음식에 대한 평가도 음식으로 소재로 한 다른 만화들에 비해 덤덤합니다. 오히려 좀 냉정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잘 먹고 나왔을 땐 '좀 과식을 해 벨트를 좀 풀어야겠다' 정도로 표현하고, 어떤 곳은 양이 적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식당에서는 음식을 먹다가 주인과 싸우고 나와버립니다.

대신 그림으로 아주 맛깔난 음식 표현을 보여줍니다. 음식에 대한 판단은 장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스스로 해 보라는 듯이 먹음직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고독한 미식가'를 보고 있으면 일본에 다시 한번 가고 싶어집니다. 최근엔 이런저런 이슈로 일본 여행 특히 도쿄 쪽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 책의 사실적인 거리의 묘사나 익숙한 지명과 음식을 보고 있으니 예전 유학시절의 추억과 함께 자꾸 그 시절과 그곳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소개되는 음식들이 특별한 음식들이 아닌 일본 사람들이 살면서 흔히 먹게 되는 음식들이 주로 등장해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이드 책의 별 다섯 개짜리 식당에서 실망해 본 경험도 있고, 그냥 무작정 걷다가 별생각 없이 들어간 곳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음식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눈으로만 보이는 맛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포장해 소개되는 곳보다 이런 책에 소개되는 곳에 더 찾아가고 싶어집니다.

일본 유학시절, 학교 기숙사 1층 '담화실'이라고 불리는 곳에 앉아 있으면 유학생들이 TV 앞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곳은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였는데, 미국, 독일, 핀란드, 중국, 대만,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이면 언제나 파티가 펼쳐지곤 했습니다. 각자 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포트럭' 파티를 종종 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전 세계의 요리와 술들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만국박람회급 페스티벌이 펼쳐지곤 했죠.

지금 같은 날씨라면 일본 편의점에서 뜨끈한 어묵을 사서 맥주와 함께 먹거나, 여럿이 '코타츠'에 둘러앉아 나베를 함께 끓여 먹고, 귤을 하염없이 까먹다 지칠 때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뭘 해도 좋았던 그 시절이 문득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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