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log/보고 들은 것

타니구치 지로 작,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우연한 산보> Review : 까칠한 일본 아재의 담담한 골목 이야기

우연한 산보
일본의 한 문구회사에 근무하는 중견 영업사원 우에노하라. 그가 근무 중에, 또는 휴일에 걸어 다니며 우연히 시작하는 산보. 그 여정 속에서 마음에 담은 일상의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키타시나가와, 메지로, 키치죠지, 이노카시라 공원… 등 문득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삶의 장면들은 모두가 명장면! 《고독한 미식가》의 황금콤비가 다시 쓰는 최고의 에세이는 당신의 삶을 향해 더더욱 힘차게 걸어들어간다!
저자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출판
미우
출판일
2012.12.15

<고독한 미식가> 타니구치 지로와 쿠스미 마사유키 콤비의 산책 에세이

평범한 중년 남성의 소박한 취미가 된 도쿄 골목 산책

일본의 중견 문구회사 부장인 우에노하라는 목적 없는 길을 잃어도 좋은 그런 산책을 즐긴다.

"TV나 잡지에 나온 곳을 찾아가는 산책은 산책이 아니다. 이상적인 산책은 '태평한 미아"

라는 신념을 가지고 산책을 즐긴다. 산책을 하면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즐기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길거리에서 눈에 띄는 가게에 불쑥 들어가 쓸데없는 물건을 사거나 군것질을 하기도 하고, 초대받지 않은 히피들의 축제에 기웃거린다. 지금은 일본의 여느 아저씨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집에서 빈둥거리다 와이프에게 눈총을 받고, 자전거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밤늦게 친구네 집에서 한 잔을 걸치고 들어가면서 아내에게 연락조차 주지 않는다.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에 공감이 가기도 했다. 이미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버린 대도시의 모습에 아쉬워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의 정취를 도쿄 골목에서 발견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도 애처로우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젊은 시절 밴드를 꿈꿀 정도로 무언가에 열정적이던 그 때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친구의 재능과 성공에 질투하기도 하고, 산책 중 우연히 만난 그 친구의 초라함에 지금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인 '이노가시라 고로'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데, 독신이라는 설정 이외에 캐릭터는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제작 후기

주인공 우에노하라가 일상에서 마주한 도쿄의 골목골목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통판 생활’이라는 잡지에 2000년 여름호부터 총 8화가 연재된 작품이라고 한다. '통판 생활'이라는 잡지는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라고 하는데, 우에노하라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주독자층이 생각하는 약간은 한심해 보이는 남편을 떠올리게끔 한 것이 나름 고도의 전략이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주부들에게 공격의 대상을 만들어 주변에게도 추천하게 만드는 흔히 '막장 드라마' 기법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8화 모두 8 페이지에서 마무리되는 짧은 에피소드들이어서 큰 사건들이 이어지진 않는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키치죠지'를 중심으로 일본 곳곳의 골목골목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일본 특유의 살짝 냉소적인 시크함도 어느 정도 묻어난다.
제작 후기 중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이 나오는데, 미식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약점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더욱 공감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8페이지 내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기 위한 장치라고도 했다. '고로' 상이 술까지 마셨다면 8 페이지로 마무리를 못 지었을 것이라며 밝혔다.
책의 뒷부분에는 작가 쿠스미 마사유키의 작업 후기가 상세히 실려있다. 그는 이 작품을 연재하면서 세 가지 규칙을 세웠다.

  1. 조사하지 않는다.
  2. 옆길로 샌다.
  3.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산책에 특정한 목적을 두지 않는 것. 그것을 통해 익숙한 거리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과정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1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아서 도쿄 구석구석을 그리도 누비도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하루종일 배회하기도 하고, 일부러 목적지 보다 한 두 정거장 정도 먼저 전철역에서 내려 걷고 보고 두리번 거리기도 했다. 그때 보았던 풍경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섬세한 작화에 녹아있어 짧은 장면장면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는 책이다. 알던 길도 같은 방법으로 가기보단 샛길로 골목길로 가보던 호기심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비효율이 허용되던 '산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즐거움' 일 수 있었던 낭만의 시기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작가는 주인공 우에노하라의 목소리를 통해 "이상적인 산책은 '태평한 미아' 라고나 할까..."라고 정의했는데, '산책'에 대한 생각이 나의 그 시절과 닮아있어 무척 반가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