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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log/보고 들은 것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 문명과 야만의 경계와 기준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문장은 표현의 정확성이 담보될 때 가능하다. 작가 김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문장과 표현의 힘이다.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는 그 힘이 더욱 빛을 발한다. 문장은 잘 벼린 칼처럼 예리하고 표현은 냉정한 듯 마음을 사로잡는다. 굳이 장르를 밝힌다면, 이 소설은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적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 규정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소설 3부작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의 ‘일러두기’를 통해 밝혀왔던 것처럼, 그의 소설은 ‘오직 소설’이고 ‘다만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일 뿐이다.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시원(始原)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한다. 굳이 시대를 밝히자면 인간이 말[馬] 등에 처음 올라탄 무렵이지만, 그 시기를 인간의 역사에서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록이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역사 이전의 시대이며, 인간의 삶이 자연에서 분화하지 못하고 뒤엉켜 있는 상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접해본 적 없는 전폭적이고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설정이다.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 아득한 시간과 막막한 공간을 작가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워간다. 이야기는 세계를 인식하는 바탕과 삶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른, 결코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두 나라 초(草)와 단(旦)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야만과 문명이 충돌하며, 그 속에서 무연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울부짖으며, 태어나고 또 죽어간다. 소설의 중심에 두 마리의 말[馬]이 등장한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리던 신월마(新月馬) 혈통의 토하(吐霞)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 혈통의 야백(夜白)이다. 두 마리 말은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도하고 전후의 폐허에서 조우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저자
김훈
출판
파람북
출판일
2020.06.15


작년에 지인분의 부친상 조문 답례로 받은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이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불리는 김훈 작가님의 신작은 여전히 군더더기 없이 곧고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초'와 '단'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설정해 놓고, '말'에게 '말'을 걸어 쓰인 기록으로써의 역사와 '말'을 통해 전해지는 기억으로서의 역사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나하'라는 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각의 지역으로 선명한 경계를 두고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대립되는 문화는 서로를 넘나들면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결국 하나로 합쳐지고 소멸되는 과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소설 속에서 무언가를 지켜려고 했고, 가지려고 했고, 경계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은 결국 그것 때문에 사라졌다.

'초' 나라는 지금까지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던 몽골을 떠올리게 했다. 초원 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도 세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칭기즈칸의 무덤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 점 또한 그랬다.
'단'은 무수히 만들어지고 사라졌던 역사 속의 문명들의 흥망성쇠의 패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야백'과 '토하'라는 다른 혈통의 말들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제목에서의 달리는 ‘말’이란 중의적 표현을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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